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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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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ayer 댓글 0건 조회 797회 작성일 18-07-2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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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cafe.daum.net/s.shool/VTto/1087

아시다시피, 필자의 사역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이다. 그러나 필자가 소원한 것도 아니었으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항도 아니었다. 10여년의 기도의 여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날 성령의 명령에 따라 또 다시 3년여 동안 악한 영들의 정체와 공격, 놈들을 쫓아내는 훈련을 한 끝에 충주로 보내져서 사역을 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의 마침은 성령께서 그만하라고 하시면서 천국으로 불러주시거나, 영적 능력이 사라져서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영성학교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인터넷에 기도훈련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자, 지금까지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었으며, 지금도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 오고는 다시는 찾지 않는다. 영성학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의 방식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정신질환이나 고질병, 혹은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기도훈련을 하겠다고 신청하면 일단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단지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싶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영성학교의 혹독한 기도훈련을 시작하기 무섭게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차피 지금 사는 것이 지옥인 사람들인,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이 기도훈련을 하기 원한다. 그 사람들은 현재의 삶도 지옥과 별다름 없기 때문에,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괘의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끈기 있게 기도훈련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 치유되고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면 기도의 강도도 약해지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성령의 사람이 될 확률이 많기 때문에, 필자는 이 사람들이 영성학교에 찾아와서 훈련을 시작하기를 하라고 있다. 영성학교의 기도훈련에 관심이 있거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처지가 이럴진대, 대다수의 우리네 교인들이 영성학교의 혹독한 기도훈련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을 만나는 성경의 방식과 성령께서 말씀해주신 방식 그리고 필자가 그동안 걸어온 기도의 방식을 나열해가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비결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하나님을 만나는 성경의 방식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잠8:1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중략..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9~13)

 

하나님을 만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식은, 간절히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것이다. 성경의 위인들은 죄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간절히 부르고 찾은 끝에 하나님을 만났다. 사도들 역시 예수님을 3년 반동안 따라다니면서 제자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따라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부르는 기도 끝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에 입교한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난 기도의 방식대로 가르쳐서 성령의 내주를 경험하고 동행하는 삶을 이끌고 있음은 물론이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1~13)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1,42)

 

위의 구절에서 오로지 기도했다는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 단어의 헬라어는 ‘프로스카르테룬테스’이다. 예전에는 이 단어를 ‘전심으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어쨌든 전심이든지, 오로지... 힘썼다고 하든지 간에, 이 말의 뜻은 대동소이하다. 필자가 다른 말로 대체해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기 살기로, 혹독하게 라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태도로 성령의 임재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의 영접기도에 아멘 하는 행태와는 판이하게 다르지 아니한가? 그게 오로지 기도하거나, 전심으로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지도자나 교인들이 필자의 주장에 수긍할 리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아무런 변화가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어떤 영적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냥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성경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면서 예배의식을 드리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신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라.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면서 영혼구원을 하는 도구로 사용되다가 천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신은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 귀에 거슬릴 것이다. 그러면서 꼭 그래야만 되느냐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신앙방식으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능력을 받을만한 믿음을 확인하는 성경의 잣대를 살펴보자.

 

믿음을 확인하는 성경의 방식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눅9:1~6)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마17:15~17)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4~18)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쓰신 방법은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시고 마을로 보내셔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였다. 지금처럼 신학교를 보내어서 목사가 되게 하거나, 전도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하게 하고 생수와 마스크 팩과 사탕을 넣은 선물을 들이밀면서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손을 이끌어서 교회의자에 앉혀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 끝에, 성령의 내주를 통해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면서 복음을 전하며 영혼 구원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간질로 고통을 받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먼저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으나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고 있다.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킨 정신질환을 치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고 사악한 세대라고 책망하고 계시다.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본 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이들 역시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자 이들의 믿음이 없고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면서, 믿는 자의 표적이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믿음과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영접기도에 아멘하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하지만, 정작 성경말씀을 철저하게 믿고 지키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시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제자들을 믿음이 없고 패역하다고 꾸짖으셨으며, 성령의 능력이 없는 사람들 역시 믿음이 없고 사악하다고 책망하셨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성경말씀 중에서 자신들이 받아들이고 원하는 내용만 믿고 있으며, 원하지 않고 행하고 싶지 않는 말씀들은 이런 저런 변명과 인본적인 주장으로 둘러대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있다.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말은 작은 것 하나라도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을 천명하셨다. 이 말씀을 믿지 않는 우리네 교인들이 받을 징벌과 책망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이참에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씀해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방식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어떤 일에서도 인내하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모든 일을, 하나님 없이도 자기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나를 만날 수도, 나는 그런 사람의 아버지도 아님도 알 것이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하고 정성스럽고 끈질긴 자들이 나를 만나는 것이지, 조급하고 자기중심으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려라.’

 

성령께서 필자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필자가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한지 10여년이 흘러서, 성령께서 필자에게 나타나셔서 해주신 것이다. 말하자면 필자는 이미 이 기도를 습관으로 들이고난 이후였다. 필자가 이 기도를 시작할 때는 아무에게도 조언이라 지도를 받지 못했다. 오직 성경을 말씀을 지도로 삼아서 험하고 먼 항해를 시작했던 것이다. 성령께서 필자의 기도를 선하게 인도해주셨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겪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기도훈련을 시키는 코치의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곱십어보자.

 

‘입으로 나를 찾는 자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는 자다. 기도의 본질은 나이고 자기도 알 수 없는 자를 만나는 것이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면 마음으로 만날 분을 사모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에게 오시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나를 찾아주시도록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한다 해도, 오직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시도록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이 기도를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가 그를 만나려고, 주리고 목마른 자가 오로지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을 혹독한 마음을 읽었을 때 내가 그를 만나려고 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들의 입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

 

성령께서 해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태도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하나님은 입으로 말해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실 것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일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일상에서도 이 기도를 잊지 않고 집요하게 조르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런 기도는 하지 않고 중요에 포기하고 하나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을 주목하라. 모든 사람이란 누구인가? 바로 모든 크리스천들이 아닌가? 우리네 교인들 모두가 이런 기도를 하지 않고, 기도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이 오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 귀신을 쫓아내며 질병을 고치는 믿음의 표적을 보이며 영혼구원 사역을 하는 성령의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안타깝게도, 영성학교의 식구들도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였지만, 여전히 성령의 사람이라는 사인이 내려오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정해진 기도시간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하게 부르는 기도에 집중하면서 집요하게 하나님을 찾고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도방식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필자는 성령께서 이 기도의 방식을 듣지 못하였지만, 오랫동안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망과 낙담의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으로부터 덕담과 칭찬도 적지 않게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기도한 방식을 좀 나누겠다. 필자는 하루 종일 기도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우선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집중적인 기도를 하려고 했다. 지금처럼 아침에 2시간, 밤에 1,2시간 기도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각각 1시간 이상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낮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려고 애썼다. 운전할 때도 하나님을 쉬지 않고 불렀고, 운동하거나 산책할 때도 하나님을 부르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거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나면 무조건 하나님을 불렀다. 그리고 기도할 시간을 내기위해서 삶에서 가지치기를 철저하게 했다. 낚시와 농구 등 취미생활을 다 끊고 친구들과의 모임도 철저하게 단절했으며, 경조사 등에서 친인척과 만나는 것도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고, 부모형제와 친척, 친구들에게서 잊혀진 사람을 자청했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가끔씩 아내와 쇼핑을 가게 되더라도, 필자는 차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고집했다. 그래서 필자의 옷조차 아내 혼자 구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욕심이 생길 것도 없었고,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 잡념이 들어오는 통로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돈 버는 일도 철저하게 줄였으니, 돈이 없어서 여행을 가거나 외식을 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기도하는 장소는 집이나 자동차 안이 전부였다. 집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차 안에서 기도했다. 겨울에는 차안이 영하 10도가 넘어서 추우므로 오리털 파카를 입고 빵모자를 쓰고 무릎에도 솜옷으로 덮었다. 여름이면 차가 더우므로 차에 좌식의자와 깔판을 싣고 다니면서, 그늘에 깔판을 깔고 좌식의자에 앉아 기도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입구에서도 행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기도하였고, 틈나면 교외의 자연을 찾아서 나무그늘 밑에서 기도하였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생계비를 버는 일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부르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중에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너는 죽기 살기로 나를 찾아왔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다.

 

오늘 필자가 오래 전 춥고 배고팠던 시절에 기도했던 방식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할 때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사무쳐서 정해진 기도시간 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부르는 습관을 들여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기도시간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계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했다고 여기는 많은 공동체 식구들이 간과하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이 기준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의 전부를 원하신다. 내 마음의 전부를 바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목숨을 다해 마음을 하해 온 힘을 다해 나를 찾아오라고 명령하시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목숨을 바치고라도 자신을 찾아오는 자녀가 있다면 버선발로 달려가 맞아주실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기적과 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정예용사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영성학교가 설립된 이유도 그런 사람을 양육해서, 하나님의 사역에 걸 맞는 성령의 사람을 기러내기 위해서이다. 영성학교의 모든 식구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예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백성이 되기를 소망한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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